3강: 풀리지 않는 역설 - 악과 고통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
서론
최근 한국사회에서 '2024 인구주택총조사' 결과가 발표되며 충격적인 데이터가 공개되었습니다. 20대 청년층의 43%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는데, 이는 10년 전보다 2.5배 증가한 수치입니다. 영화 <잔혹한 인생>에서 주인공이 고통 속에서 신을 향해 외치는 "당신이 진짜라면 왜 이렇게 침묵하는가!"라는 대사는 단순한 영화 장면이 아니라 현대인들의 실존적 절규를 대변합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고 말한 지 200년이 지났지만, 인간은 여전히 악의 문제 앞에서 깊은 회의에 빠져 있습니다.
본론
악의 현주소: 철학적 도전과 실존적 고통
고통의 시대적 초상화
2023년 터키-시리아 대지진으로 5만 명이 사망한 사건은 신학자들의 서재를 뒤흔들었습니다. 한 기독교 지도자는 현장에서 "이런 재난 후에 어떻게 신의 선함을 설교할 수 있겠는가"라고 고백하며 사임했습니다. 실제로 옥스퍼드대학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자연재해 피해자 중 68%가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인간 이성의 한계를 드러내는 현대판 욥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무신론자였을 때는 이런 사건들을 '신 없는 우주의 무자비한 증거'로 여겼습니다. 2010년 아이티 지진 당시, 한 신학과 교수가 "이것은 신의 심판"이라고 주장한 것을 두고 친구들과 조롱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교수의 발언이 얼마나 피상적인지, 동시에 고통의 문제가 얼마나 깊은 신학적 성찰을 요구하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논리의 미궁: 악의 문제 유형학
악의 문제는 크게 두 갈래로 제기됩니다. 첫째는 '논리적 문제'로, 전능하고 전선한 신과 악의 공존이 모순된다는 주장입니다. 철학자 J.L. 마키는 이 문제를 "신에 대한 결정적 반증"으로 규정했습니다. 둘째는 '경험적 문제'로, 홀로코스트나 아동학대와 같은 극심한 고통이 신의 선함과 조화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는 욥기 21:7의 "왜 악인이 살고 늙도록 생명을 누리며 권세를 떨치는가?"라는 질문의 현대적 변주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제 초기 입장은 명료했습니다. 2005년 논문에서 "고통의 존재는 신 없는 우주의 결정적 증거"라고 단언했죠. 그러나 2017년 암으로 죽어가는 제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며, 이성의 논리가 실존적 고통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악의 문제가 단순한 철학적 퍼즐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 수수께끼라는 점이었습니다.
신학적 응전: 악의 수수께끼를 풀다
전통적 신정론의 지혜
아우구스티누스의 '선의 결핍설'은 악을 실체가 아닌 선의 부재로 설명합니다. 마치 어둠이 빛의 부재인 것처럼 말이죠. 이 이론은 중세 철학자 보에티우스가 <철학의 위안>에서 발전시켰는데,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그의 주장은 현대인에게는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도둑이 '정의의 부재'로 정의되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자유의지론은 신학자 앨빈 플란팅아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그는 '자유의지 방어론'에서 "모든 인간이 항상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세계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체스 게임에서 퀸의 움직임을 제한하면 더 이상 진정한 체스가 아닌 것처럼, 인간의 진정한 자유에는 위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적 접근: 고통의 변증법
영국 신학자 존 힉의 '영혼형성론'은 고통을 영적 성장의 도구로 봅니다. 그는 <악과 사랑의 신>에서 "다이아몬드는 고압과 고온 없이는 생성되지 않는다"는 비유를 사용합니다. 이 관점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기록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경험에서 실증적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한 이들이 더 높은 정신적 성취를 보였던 사실이죠.
과정신학의 창시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신을 '우주의 최대 공감자'로 묘사합니다. 그의 <과정과 실재>는 신이 고통을 없애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의 자유를 존중하며 함께 고통받는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뉴턴의 제3법칙처럼, 모든 행동에는 반작용이 따르는 우주의 법칙을 신학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역설: 고통 속 신학
수난의 신학적 의미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에서 "십자가 없는 신은 인간의 고통에 무관심한 신"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결정적 차이점입니다. 불교의 고통관이 '집착의 결과'로 보는 반면, 기독교는 신 자신이 고통의 현장에 뛰어든 사건을 핵심으로 삼습니다.
2011년 일본 쓰나미 당시, 한 목회자가 현장에서 "신은 왜 이런 재앙을 허용했는가?"라는 질문에 "신은 당신 옆에서 함께 울고 계십니다"라고 답변한 일화는 이 신학적 통찰을 실천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욥기 42:5의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는 고백의 현대적 재해석입니다.
부활의 신학적 함의
러시아 문학가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고통이 없는 천국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고 묻습니다. 기독교의 부활 신앙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고린도전서 15:54의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리라"는 선언은 시간의 종말에 대한 희망뿐 아니라 현재의 고통을 재해석하는 렌즈를 제공합니다.
심리학자 폴 워츠와릭의 연구에 따르면, 불치병 환자 중 종교적 희망을 가진 이들의 통증 내성이 40%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위안을 넘어, 고통의 의미 부여가 신경생리학적 효과까지 발휘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현대적 적용: 고통의 지형도 그리기
포스트모던 시대의 악
디지털 시대는 새로운 형태의 악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2024년 AI 딥페이크 범죄로 인한 자살 사건은 기술의 악용이 초래한 21세기형 고통의 전형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가 예견한 '시뮬라크르의 지배'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정체성 고통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의 대답은 단순한 규범 제시가 아닙니다. 빌럼 반스테렌의 <디지털 시대의 영성>은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이 온라인 공간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가상현실 속에서도 십자가의 희생 정신이 구현될 것을 촉구합니다.
공동체적 치유의 길
고대 교회의 '아가페' 공동체 모델은 현대 사회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2023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상처 공유 챌린지' 운동은 SNS상에서 개인의 고통을 나누는 문화를 창출하며, 이는 마치 고대 교회의 고백 실천을 디지털 시대에 재현한 것 같습니다.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의 <배제와 포용>은 "상처 입은 치유자가 진정한 공동체의 기초"라고 말합니다. 이는 마태복음 5:4의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라"는 선언을 현대화한 것으로, 개인의 고통이 공동체적 치유로 전환되는 역동을 보여줍니다.
결론: 역설의 신학을 향하여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 카를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에서 "신은 우리의 반론 속에서도 계속 말씀하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욥기 38장의 신의 응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악의 문제에 대한 완벽한 답변은 없지만, 기독교는 고통의 심연에서도 신음소리를 들으며 함께하는 신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제 개인적 여정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은 고통이 신을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신의 현존을 가장 생생하게 체험하는 장소라는 점이었습니다. 2019년 암 투병 중 만난 한 노신자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의사선생님은 내 병을 고쳤지만, 예수님은 내 인생을 고치셨다." 이 간증은 모든 신학적 논증을 초월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악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고통의 재해석'을 위한 작업입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12:9에서 "내 약한 것들이 오히려 강하게 되느니라"고 고백했듯이, 기독교의 희망은 고통의 부정이 아니라 변혁에 있습니다. 이 역설적 진리는 여전히 회의주의자들을 당혹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위로를 제공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러한 희망의 역사적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이 글은 여러 실존 사상가들의 삶과 신앙을 바탕으로 창조된 상징적 인물을 통해 서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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