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5-2강 : 끝나지 않은 여정: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기독교가 말을 걸다

realsoulmate 2025. 5. 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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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강 : 끝나지 않은 여정: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기독교가 말을 걸다

4.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다 : 하나님의 일반 은총과 특별 계시

과학과 신앙의 관계
NASA의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포착한 초기 우주의 경이로운 모습은 과학계에 큰 충격을 던졌습니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 앞에서, 때로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빅뱅 이론과 창조 신앙이 대립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거 과학을 맹목적으로 신뢰했던 저에게, 이제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 주권' 개념이 새로운 통찰을 줍니다. 이는 과학과 신앙이 각각 고유한 영역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낼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신학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두 가지 방식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입니다. 광활한 우주와 정교한 자연 법칙은 하나님의 존재와 놀라운 능력을 분명히 보여주는 일반 계시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죄로 인해 타락하여 때로는 이 일반 계시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반면, 성경이라는 특별 계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인간을 향한 사랑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우주는 우리가 태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놀라운 직관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과학적 발견 너머에 존재하는 창조주의 섭리를 어렴풋이 암시하는 듯합니다. 과학이 우주의 작동 방식, 즉 '어떻게'를 탐구한다면, 신앙은 존재의 의미와 목적, 즉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제시합니다. 이 두 가지 질문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할 때 더욱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과거 과학적 탐구에 몰두했던 저에게, 이제는 과학의 경이로움 속에서 창조주의 손길을 발견하는 것이 더욱 깊은 지혜를 가져다줍니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영성
2025년, 뉴럴링크 같은 기술이 인간 뇌에 직접 인터넷을 연결하려 한다고 해요. 이거 정말 놀라운 발전이지만, 동시에 '인간이란 대체 뭘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게 만들죠. 우리는 그냥 생물학적인 기계일까요, 아니면 정신적인 존재일까요?


기독교 신학에서는 인간을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 않아요. 영과 육이 하나로 합쳐진 존재로 이해하죠.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을 보면, 마음만 새로워지는 게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 존재 전체를 변화시키신다고 해요. 단순히 생각을 바꾸는 걸 넘어서, 우리 삶 자체가 하나님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되는 거죠.


제가 청년들과 나눈 "메타버스 예배는 진짜 예배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한복음 4:23). 이 말씀은 예배의 중요한 본질을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예배의 외적 형식이 아니라, 참된 예배자의 마음과 그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본질이죠. 물론 메타버스 예배의 무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예배 방식에 대해서는 주의해야 할 점들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5. 관계의 위기와 공동체의 회복: 언약 공동체의 의미

현대 사회는 소셜 미디어라는 놀라운 연결망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쉽게 타인과 이어질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안에는 깊고 진정한 관계에 대한 갈망, 그리고 그 부재로 인한 외로움과 고립감이 더욱 커져가고 있는 듯합니다. 오랫동안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강조하는 철학을 탐구해 왔던 저조차, 이 깊어지는 단절감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개인주의가 당연하게 여겨지고,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마음을 나누기보다 피상적인 관계에 머물거나, 심지어 관계 자체를 포기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믿는 이들과의 수직적이고 수평적인 '언약 공동체' 안에서 참된 의미와 기쁨을 발견하도록 창조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는 말씀은 단순한 윤리적 권고가 아니라, 이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과 연대가 우리의 존재 이유이자 세상에 우리를 드러내는 표징이라고 강조하시는 것이죠.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언약 공동체'의 살아있는 증거였습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필요를 서로 채웠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교제와 격려를 통해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마치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공동체였습니다. 오랫동안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중시했던 저에게, 이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나눔은 단순한 인간적인 연대를 넘어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맺어진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이 '언약 공동체'의 회복이야말로, 피상적인 관계의 공허함을 극복하고 진정한 소속감과 안정감을 되찾으며, 동시에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는 길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6. 환경 파괴와 창조 질서 회복: 청지기적 소명

2025년 현재, 우리는 더 이상 기후 변화나 환경 오염 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끝없는 소비를 부추기는 현대 문명은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심각하게 파괴했고, 이는 곧 미래 세대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오랫동안 인간 중심적인 철학을 탐구하며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맹신했던 저 역시, 이 파국적인 현실 앞에서 깊은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인간은 이토록 무책임하게 자연을 파괴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이를 '다스리고 지키라'(창세기 1:28, 2:15)는 '청지기'의 역할을 맡기셨다고 말이죠. 이는 인간이 자연을 자신의 욕망대로 휘두르고 파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존중하고 그 아름다움을 보존해야 할 신성한 책임을 짊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오랫동안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했던 저에게, 이 '청지기'라는 개념은 인간의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가치, 즉 단순하고 절제된 삶,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탐욕과 과소비로 끊임없이 달려가는 현대 사회에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보존하고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환경 윤리적인 책임을 다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소명이라고 믿습니다. 과거의 철학적 고민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성경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우리는 이 지구를 회복시키는 거룩한 여정에 동참해야 합니다.

 

결론: 영원을 품은 시간 여행자들에게

20년 전, 저는 니체를 따라서 "신은 죽었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겁니다. "신은 죽지 않았어요. 오히려 우리가 신을 죽이려고 했을 때, 그분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신학자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는 '성경 신학'에서 구속사의 관점을 아주 중요하게 강조했어요.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자신을 드러내셨고, 그 계시의 가장 놀라운 순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요한복음 1:1, 14).


어느 날 지하철역 지하도에서 만났던 한 노숙인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건네셨어요. "교수님, 세상 사람들은 나를 쓰레기처럼 보지만, 예수님은 나를 보석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세상에 전하는 복음, Good News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에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안에서 선택받은 소중한 보물입니다.


신학자 존 칼빈은 이걸 '이중 은혜'(double grace)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우리는 의롭다고 인정받고(칭의), 또 점진적으로 그분을 닮아가는(성화)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는 거죠. 이 모든 여정은 우리의 힘이나 노력이 아니라,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과학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빅뱅 이전의 순간, 철학이 아무리 애써도 닿을 수 없는 존재의 가장 깊은 근원, 예술이 아무리 아름답게 표현하려 해도 채울 수 없는 영혼의 깊은 갈증 - 이 모든 것에 대해 성경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제가 20년 동안의 길고 긴 철학적인 여정 끝에 마침내 발견한 것은, 그 모든 논리의 가장 마지막 지점에 서 계신 분, 모든 질문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바로 그곳에서 만난 그분의 놀라운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마지막 강연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시고, 여러분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시길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창세 전부터 여러분을 사랑하셨고, 십자가에서 여러분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셨으며, 지금도 살아계셔서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 놀라운 은혜의 초대는 언제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대답을 간절히 기다리시는 그분께, 용기를 내어 한 걸음만 내딛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이 글은 여러 실존 사상가들의 삶과 신앙을 바탕으로 창조된 상징적 인물을 통해 서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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